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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스토리

장-밥티스트 륄리, '지휘봉'에 발 찔려 죽은 지휘자

by 스내커 202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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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무용가이자 작곡가로,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은 음악가입니다. ‘바로크 시대(1600년대 초반부터 1750년경까지 유럽에서 주로 발달한 예술적, 문화적 흐름)’ 당시 프랑스 오페라 음악과 발레 음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최초의 지휘자’라는 기록도 갖고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륄리는 지휘하던 중 ‘지휘봉’에 찔려 사망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지휘봉에 찔려 사망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륄리가 활동하던 당시의 지휘봉은 꼬챙이 같은 현재의 지휘봉이 아닌 엄청난 길이의 ‘지휘 막대기’였다고 합니다.

 

 

지휘법이 발달하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사람 키만 한 지휘 막대기로 바닥을 쿵쿵 치면서 박자를 잡았습니다. ‘최초의 지휘자’였던 릴리도 당연히 이 ‘딱따구리 지휘법’으로 지휘를 해왔겠죠. 그런데 딱따구리 지휘법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1687년 1월의 어느 날, 륄리는 루이 14세의 건강 회복을 기념하기 위해 찬송가인 ‘테 데움(Te Deum)’을 지휘합니다. 당연히 지휘 막대기로 바닥을 쿵쿵 치며 박자를 잡던 그는 실수로 자신의 발을 내려치는데요. 끝이 뾰족했던 지휘 막대기는 그의 발가락을 크게 다치게 했고, 의사에게 치료를 받지만 상처는 더욱 심하게 곪아갔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17세기 당시 프랑스 파리의 위생 환경은 매우 더러웠습니다. 이 때문에 가벼운 상처도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지는 일이 허다했다고 하는데요.

더군다나 륄리는 ‘살기 위해선 다친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도 무시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가 괴저로 발전돼 썩어들어갔고, 파상풍 등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같은 해 3월 22일 죽음을 맞이합니다. 륄리가 발가락 절단을 거부했던 이유로 “그가 ‘궁정 무용가'를 겸하고 있어서 발가락 절단을 감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편, 륄리는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사생활도 다른 의미로 뛰어나(?)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륄리는 결혼했음에도 여러 여성과 혼외 관계를 갖는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를 과시하기까지 했다는데요. 심지의 그는 남성들과도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여성, 남성, 소년을 가리지 않는 륄리의 방탕한 삶에 루이 14세는 매우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활동하고, 또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매우 높이 평가한 루이 14세는 결국 륄리를 용서하고 평생 자신의 곁에 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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