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권 속 세종대왕의 얼굴.
인자한 표정의 세종대왕 얼굴은 우리에겐 매우 익숙하고, ‘진짜’ 같은 얼굴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당시의 ‘진짜’ 세종대왕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린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얼굴은 진짜가 아닙니다. 화가의 ‘상상’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요.
세종대왕의 어진은 현재 없다
세종대왕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은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임진왜란 등의 전란과 6.25 전쟁 때 화재로 전부 소실됐다고 합니다. 참고로 1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조선의 임금 27명 중 어진이 남아있는 임금은 6명(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 인조의 부친인 원종)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세종대왕 얼굴, 영정(옛사람의 초상화)은 197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은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이 그린 것입니다.
당시 김 화백은 역사학자들의 의견과 기록, 여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세종대왕 영정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후 김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영정은 정부의 ‘표준 영정’에 지정돼 1만원권 등의 도안으로 사용됐습니다. 표준 영정은 선현의 영정이 난립하는 것을 막고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영정입니다.
광화문 앞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 속 얼굴 역시 김 화백의 영정을 참고해 김영원 조각가가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김기창 화백의 친일 행적
문제는 김기창 화백이 ‘친일 행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 화백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고,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도 분류됐습니다.
이는 김 화백이 친일 행적으로 의심되는 활동을 많이 했다는 방증인데요.
논란이 되는 김 화백의 친일 행적을 보면 그는 1930년부터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조선미술전람회 추천 작가가 되고 총독상 수상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친일 예술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김은호는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평의원으로 활동하던 친일 화가입니다.
김 화백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삽화를 싣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은 “1943년 8월 7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시화 연재물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에서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고 조선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기 위한 목적의 삽화를 그렸다. 이는 징병에 응해 떠나가는 장한 아들과 이를 자랑스럽게 배웅하는 늙은 노부모를 그린 것이었다. 여기서 청년은 ‘축 입영’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있어 일제의 부름에 자랑스럽게 선택된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944년 발표된 ‘총후병사’의 경우 완전 군장으로 간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옆모습을 그린 그림인데요. 이 그림은 일제의 경제적 지배를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의 사보인 <회심>에 그려졌습니다.
또 같은 해에 결전(決戰) 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적진육박'은 착검을 하고 적진을 향해 달려드는 일본 황군의 살기 어린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제 징병’과 ‘군국주의’에 대한 선전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그림을 그린 김 화백은 ‘삽화에 불과해 친일 작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친일 화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표준 영정 속 세종대왕 얼굴과 김기창 화백의 얼굴
김 화백의 친일 행적도 논란이지만 여러 논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논란은 영정 속 세종대왕의 얼굴과 김 화백의 얼굴이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영정 속 세종대왕은 쌍꺼풀이 짙은 눈매와 오뚝한 콧날, 인자한 인상을 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여러 전문가는 김 화백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얼굴과 흡사하게 그렸다고 지적합니다.
‘친일 행적’, ‘상상도’ 논란 때문에 김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표준 영정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표준 영정 지정 해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문체부가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관련해 한국은행은 지난 2020년 화폐 속 위인 영정을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결정이 미뤄지며 현재까지 논의만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그린 현용 화폐 속 표준 영정들
참고로 현용 화폐 가운데 100원화(이순신), 5천원권(율곡 이이), 1만원권(세종대왕), 5만원권(신사임당) 속 정부 표준 영정의 화가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돼 있습니다.
이순신 표준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이이와 신사임당 표준 영정은 김은호 화백이 그렸는데요. 현 5천원권과 5만원권 속 영정은 ‘화폐 화가’로 알려진 이종상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의 작품이지만 그의 그림은 스승인 김은호 화백의 표준 영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4년 김은호 화백 유족과 저작물이용계약을 맺고 신사임당 표준 영정을 사용하는 대가로 1,200만원을 지급했고, 이종상 화백에게는 2008년 제작 비용 등으로 3천만원이 지급됐습니다.
한편. 김기창 화백은 세종대왕뿐 아니라 을지문덕·김춘추·문무왕·신숭겸·김정호의 표준 영정도 그렸습니다.
장우성 화백은 이순신을 포함해 사명대사·권율·김시민·유관순·윤봉길의 영정을 그렸는데요. 이들이 이 영정을 그린 것은 일제가 물러난 후 한참 뒤의 일입니다.
장 화백이 그린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은 친일 논란과 함께 영정 속 얼굴이 열사의 용모와 다르게 표현됐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 새로운 영정으로 교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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