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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스토리

"노벨 문학상 한강"...'노벨상' 수상을 거절한 최초의 인물은?

by 스내커 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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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죠.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두 번째인데요.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히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어 “한강은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기록도 썼습니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작가로서는 18번째 수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 국적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한화 약 13억 4천만원)과 상패, 메달, 증서가 수여되는데요. 수여식은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의 기일에 맞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됩니다. 스톡홀름에서 수여식이 진행되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경제학상과 달리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식이 진행됩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스웨덴의 화학자, 엔지니어, 발명가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상의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노벨상인데요.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에서 인류의 복지와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매년 수여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의 경우 스웨덴 국립 은행(또는 중앙 은행)이 노벨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 공식적으로는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 은행 경제학상’이라고 불립니다.

 

 

노벨상은 수상자 선정을 위해 전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 교수, 이전 수상자 등 각 분야 전문가 및 기관에서 후보자 추천을 받습니다. 그리고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노벨 위원회를 조직해 후보자들의 업적과 공헌도, 영향력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그리고 매년 10월 초 수상자가 발표되는데요.

 

참고로 선정 및 발표는 분야별로 각기 다른 곳에서 진행됩니다.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 한림원(Kungliga Vetenskapsakademien)에서,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Svenska Akademien)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은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에서,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The Norwegian Nobel Committee)에서 선정 및 발표를 담당합니다.

 

이 중 노벨 평화상이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선정 및 발표되는 이유는 노벨의 ‘유언’ 때문입니다.

위에서 잠깐 설명한 것처럼 노벨은 유언장에서 자신의 재산을 활용해 노벨상을 설립하도록 지시했는데요. 그러면서 각 상의 선정 기관을 명시했습니다. 특히 평화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나의 남은 재산은 다음과 같이 분배돼야 한다... 그 이자는 매년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 사람들에게 상으로 수여된다. 상은 다섯 부분으로 나눠지며... 다섯 번째 부분은 국가간 우호, 군대의 해체 또는 축소, 평화 회의 개최를 위해 가장 많이 또는 가장 잘 노력한 사람에게 수여되며, 이 상은 노르웨이 의회가 선출한 다섯 명의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수여된다”

 

노벨이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선정 및 발표되도록 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당시의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의 역사적 배경, 노르웨이의 평화 운동에 대한 관심, 그리고 노벨의 국제 평화에 대한 염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는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 수상자는 상당한 상금과 함께 엄청난 명예도 얻을 수 있는데요.

놀랍게도 이 노벨상을 개인적인 신념이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수상을 거절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이 사례들은 노벨상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수상자 개인의 철학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그럼 노벨상을 최초로 거절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평론가로 활동한 ‘실존주의’의 대표적 인물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입니다.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요. 하지만 일생 동안 어떠한 공식적인 영예나 상도 받지 않겠다는 개인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노벨상이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벨 위원회에 감사의 뜻과 함께 수상을 정중히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베트남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레득토(Le Duc Tho)’도 노벨 평화상을 거절한 인물입니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함께 미국-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을 진행했고, 1973년 1월 파리 평화 협정 체결을 이끌며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 공로를 높게 평가받아 1973년 헨리 키신저와 함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레득토는 ‘베트남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면서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는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됩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초기엔 수상을 수락했지만 소련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수상을 결국 거절합니다. 소련 정부가 압박한 이유는 ‘닥터 지바고’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반소련적’이었다는 건데요.

특히 1957년 출판된 ‘닥터 지바고’는 소련 정부의 압박과 검열로 인해 소련 내에선 출판이 금지됐지만 서방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노벨상 수상을 거절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나치 독일 정부 당시의 독일 수상자들인데요.

먼저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는 193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지만 나치 독일 정부의 반대로 인해 수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7년에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지만 상금은 받지 못했습니다.

1938년, 1939년 각각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쿠(Richard Kuhn), 아돌프 부트난트(Adolf Butenandt)도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 정부의 반대로 인해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이들도 전쟁 이후 메달과 증서는 받았으나 상금은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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