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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스토리

'고양이 집사'가 된 왕 숙종과 '퍼스트 캣' 금손이 이야기

by 스내커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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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재위 1674~1720)’은 ‘고양이’를 정말 사랑한 임금입니다. ‘고양이 집사’ 출신의 세계의 여러 왕 중 단연 ‘1등 집사’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지금부터 숙종의 남달랐던 ‘고양이 사랑’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숙종은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다혈질 왕비로 유명했던 ‘명성왕후(조선 현종의 왕비이자 숙종의 어머니)’조차 아들 숙종의 포악한 성격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숙종은 반려묘 ‘금손(金孫)’이에게 만큼은 따뜻한 집사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숙종은 궁궐 내 후원을 산책하던 중 굶주려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금빛 털이 눈에 띄었던 그 고양이에게 ‘금덕(金德)’이란 이름을 붙여준 숙종은 녀석을 데려와 직접 돌보기까지 합니다. 고양이 집사의 시작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금덕이는 새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 다리’를 건넙니다.

숙종은 금덕이의 장례까지 치러줬고, 녀석이 낳은 새끼에게 ‘금손(金孫)’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그러고는 어미에게 그랬듯이 금손이도 애지중지 돌보기 시작합니다.

 

 

식사를 할 때면 금손이를 꼭 곁에 두고 함께 밥을 먹었고, 고기 반찬이 나올 때는 이를 남겨뒀다가 금손이에게 손수 줬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랏일을 볼 때도, 잠을 잘 때도 금손이를 늘 곁에 두고 쓰다듬어줬다고 하는데요.

 

숙종과 금손이의 러브 스토리는 1720년 숙종이 승하하면서 끝이 납니다.

숙종이 세상을 떠난 후 금손이는 이 사실을 알게 됐는지 음식을 먹지 않고 3일 동안 슬프게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인원왕후(숙종의 두 번째 계비)가 이 사실을 알고 신하들을 시켜 금손이를 돌보게 했지만 금손이는 여전히 먹기를 거부하고 애처로이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숙종이 세상을 떠난 지 20일 만에 금손이도 무지개 다리를 건넙니다. 끝내 주인을 따라간 금묘의 충심에 감복한 인원왕후는 녀석을 비단으로 감싸 속종의 능인 명릉(明陵) 근처에 묻을 것을 지시합니다.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이하곤의 ‘두타초’, 이익의 ‘성호사설’에 수록돼 있습니다. 또 김시민의 시문집인 ‘동포집’에는 이 이야기를 담은 시 ‘금묘가(金猫歌)’가 있을 정도죠. 금묘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궁중에 황금색 고양이 있었으니 임금께서 사랑하여 이름 내려주셨네

“금묘야”하고 부르면 곧 달려오니 사람 하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하였네

기린과 공작도 오히려 멀리하셨건만 금묘만 가까이서 선왕 모시고 밥먹었네

(중략)

문에 들어서자마자 슬퍼하며 위축됐네

밥에 이미 마음 없거늘 고기인들 먹으랴

경황없이 달려가 빈전 뜰에서 곡하며 우러러 빈전 향해 몸을 굽혔네

그 소리 너무 서글퍼 차마 들을 수 없으니 보는 사람 사람마다 눈물 절로 떨구었네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의 셋째 딸인 숙명공주 역시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온종일 고양이만 끼고 돌아 효종이 이를 꾸중하는 편지를 보냈다고도 하는데요.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너는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는 하거니와 어찌 고양이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

 

참고로 ‘인선왕후(효종의 왕비이자 숙명공주의 어머니)’도 “네 여동생은 벌써 회임(임신) 중인데, 너는 어쩌자고 고양이만 좋아하냐?”라는 편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집사는 아니었지만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구한 세조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는 어느 날 강원도 오대산에 위치한 상원사를 방문합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세조가 법당에 들어가려는 순간, 고양이 몇 마리가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며 법당에 못 들어가게 막아섭니다. 의심이 많았던 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수색할 것을 지시하는데요.

놀랍게도 자객이 발견돼 세조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감복한 세조는 고양이에게 전용 밭을 하사하는 동시에 석상까지 만들 것을 지시합니다.

위 이야기는 문서로 기록된 것이 아닌, 상원사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즉, 고양이를 영물로 여긴 조선시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설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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