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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스토리

비극적이었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최후

by 스내커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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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출신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9세기, 20세기에 활동한 건축가이지만, 21세기인 지금도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빛내고 있죠.

 

 

가우디의 건축물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연, 종교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직선과 각진 형태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과 유기적 형태는 그의 건축물을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보이게 했고, 타일 조각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이는 방식인 ‘트렌카디스(Trencadís)’를 즐겨 사용해 건축물에 다채로운 색감을 더했습니다.

 

 

또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물의 뼈, 나뭇가지 등 기하학적 패턴을 반영해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될 수 있도록 했고, 빛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자연광이 내부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도록 설계했죠.

가우디의 종교적 신념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건축물 곳곳에 가톨릭 상징물을 배치해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현재도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으로, 조각과 디자인을 통해 성경 속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직’ 가우디만 만들 수 있었던 건축물들은 오늘날 바르셀로나, 그리고 스페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고 하죠.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카사 밀라(Casa Milà), 구엘 공원(Park Güell),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있습니다. 이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가장 유명합니다.

1882년 3월 19일 공사를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이자, 가우디 특유의 독창적인 형태와 종교적 신념을 가득 담은 건축물인데요. 그 크기가 광대해 1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며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 완공 예정입니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만든 건축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가우디.

스페인을 넘어 세계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최후는 매우 비극적이었습니다.

 

1926년 6월 7일, 가우디는 여느 때처럼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지나가던 ‘노면 전차(트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합니다. 당시 74세였던 그는 이 사고로 의식을 잃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치명상을 입는데요.

그런데 노면 전차 운전사가 가우디를 ‘노숙인’으로 여겨 그냥 길가에 내팽개친 뒤 가버립니다. 당시 가우디는 낡은 옷차림에 닳아 해진 신발을 신고 있었고, 신분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고를 목격한 행인들이 가우디를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여긴 택시 기사들은 가우디를 태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로 잡은 택시 운전사가 가우디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해 그는 빈민들을 위한 병원인 산 파우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여기서 기본적인 치료밖에 받지 못했던 가우디의 상태는 악화됐고, 이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친척과 친구들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하지만 가우디는 이를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1926년 6월 10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우디의 장례식은 수많은 바르셀로나 시민의 애도 속에 국장에 준하는 수준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가우디의 시신은 그가 마지막까지 열정을 쏟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가우디의 무덤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방문해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고 있는데요. 그의 묘비에는 아래의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위대한 예술가이며, 경이로운 이 교회의 건축가.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나다. 이 위대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기대하노라”

 

한편 가우디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사는 파직과 동시에 구속됐으며, 승차를 거부한 택시 기사 3명도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이후 택시 기사 3명과 가우디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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